유리역사의 기원은, 기간 및 유리제작의 형태로 볼때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제품 각각의 틀을 만들어 용기를 성형하는 원시적인 방식

 

 

 

 

 

유리불기법(Glass Blowing ; 유리물을 파이프 등을 통하여 입으로 불어 형태를 완성시키는 방법)이 고안되어 유리조형으로서 실용화된 시대

 

 

 

 

 

비잔틴유리를 주로하는 중세기로 제2기의 연장

 

 

 

 

 

베네치아의 유리가 등장하여 유럽각국은 물론 멀리 동방 아시아 지방에까지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어 근대 유리조형의 기초를 이룬 시대이며, 유리의 성질이 변하고 수공으로부터 유리제작이 갑자기 산업화 되어지는 19세기까지 점차로 그 조형의 완전함을 증대시킴

 

 

 

 

 

유리가 공업화 되어 대량생산체재를 갖추고 생활에 필수품이 된 형태로 발전되었음.

 

 

 

B.C. 17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인들은 이미 B.C. 3000년 경 전부터 돌구슬에 유리질의 유약을 사용하였으며, B.C.1350년 경으로 짐작되는 유리 제조공장의 유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최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유리제품은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료되며 서로 유사한 점이 있으나 그중 어떤 것이 최초의 제품이며 최초의 지역인지 알 수 없다. 당시의 유리는 오늘날의 상식으로 말하자면 고작 유리의 이미지를 갖는 것이었다.제작기법은 사질 점토로 내경을 만들어 그 외측을 녹인 유리로 덧칠하여 고화시키고 내형을 파내는 방법과 자형에 용해 유리를 넣어 융형을 떠서 성형하는 방법이었다.

 

이것들은 각각의 형을 만들어 유리용기를 성형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불가능하고,
용기의 크기와 형태도 한계가 있었다.
한편,
중국에서도 같은 시대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Glass Beads와 톰보옥 등이 내려오고 있어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기술교류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집트 문명 후기 에는 유리표면에 색깔이 있는 가는 줄을 그어서 깃털 또는 지그재그 문양을 그린 유리그릇을 만들었다.


 

현대적 유리의 실질적인 기원은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 때 시작되었으며, 후에 고대 로마에서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장인들은 모자이크 유리라고
알려진 기술을 완성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색을 지닌 유리봉 조각을 자른 다음 서로 엮어서 다양한 장식 모양을 내는 기법이다. 꽃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유리봉을 잘라서 만든 밀레피오리 유리도 모자이크 유리의 한 양식이다.
틀에 부어 만든 유리도 일찍부터 발달했는데, 이것은 유리를 틀에 밀어 넣어 특정한 모양을 만든 것이다. 이 때 무늬를 새기거나 색을 넣어서 여러 모양의 장식을 만들 수 있었다.


 

제18왕조(B.C. 1600년~1700년) 무렵

 

부터였는데, 술잔이나 항유병 등이 주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토토메스 3세의 문상이 있는 술잔은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유리잔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어떠한 인공적인 유리도 후기 청동기시대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유리용기가 지중해 지역에서 재등장 했다.



 

티그리스 유역에서 밝혀진 다른유리 제조기술은 절정기에 이르고

 

있었으며, 이후 헬레니즘시대 동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B.C. 1세기경 새로운 로마제정시대로 부터 로마제국이 분열할 무렵 시돈(Sidon)에서 유리조형사상 세기적인 생산기술 혁명이 일어났다. 이 기술은 유리불기법(Glass Blowing)
이라고 불리어 지는 것이다.
철 파이프 앞 끝에 유리를 물방울 같이 말아 올려 둥글게 하고, 반대편 끝에 공기를 불어넣어 유리를 풍선과 같이 부풀려서 성형하는 방법이다.
부풀려진 유리는 바깥 공기와 닫는 면적이 넓어 800도씨의 전후의 굳지 않은 유리도 급속히 냉각되며, 소형은 2-3분으로 딱딱하게 고화되고 대형의 것도 10분 정도면 고화한다.
각각의 형틀로 소량을 만들던 시대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무엇이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유리를 틀 속으로 불어 넣거나 완전히 자유로운 형태로 만들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유리의 층을 깎아내어 도안을 양각한 카메오 유리를 완성했다. 이 유리불기법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져, 기본적인 유리기법으로서 세계에서도 널리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당시의 유리조형품은 Roman Glass라고 총칭되는 것으로 그외 컷트가공, 에나멜채화, 선묘화 등의 기술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창재료에 있어서 고대 로마의 주택건축에서 반투명의
천연석재와 운모판이 일반적이었던것 같으나 이때에 처음으로 유리와 같은 창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폼페이의 중앙광장의 동북방에 접한 훼로가에 면하고 있는 광장 목욕탕의 천정에서는 2개의 작은 창이 청동 창살에 4개의 폭 230mm, 길이 540mm의 판유리가 사용되었었다.또한 4세기경 로마시인 L.C 라크 단테우스가 "우리들은 창유리를 통하여 보고자하네, 눈으로 물건들을 분별할수 있다네" 라고 노래하고 있어 시는 이 이전에 투명유리가 출연하여 실제로 상당히 보급되었다고 하는 것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들 로마시대의 유리용기의 뛰어난 생산물, 기술등은 유럽을 시작으로 멀리 중국까지도 전해진 듯 하며 여러가지 고문헌에서 창유리등에 대하여 많이 인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