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대유리의 발달과 상황을 간략히 개관해 보면 대체로
지금으로부터
약2200년전인 B.C 2세기 전반의 한국최초 유리제작
시기부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사랑받고 선도적이었으며 발전단계 및 성분변화는 다음 표와같다.

유리공예의 역사적 고찰을 보면 대체로 고려초기 약 11-12세기경
이후로 유리제품의 제작과 선호도는 기울기 시작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약1300-1400여년간에 집중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고대유리는 제작의 개시인 B.C 2세기경 중국으로부터 소재유입으로 시작되어 동남아시아 등지로부터 서방계통의 유리제품과 기술의 도입이 되면서 삼국시대와 신라통일시대 동안 구슬, 용기, 사리함병 등에서 화려한 전개를 보였다고 하겠다.

특히 구슬에 대한 애호는 각별했으며 소형장식품과 사리함병으로서 일찌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한국인에 의한 독창적인 시도를
보였다. 근접국인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와는 달리 16세기 이후에
들어와 서양과의 교류를 통한 서방문물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유리공예가 재생되고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이후 3-4백년의 전통이 오늘의 유리공예에 반영됐다고 사료되며 오늘날 새로운 유리문화를 창조를 위해서는 산,학이 협력하여 우리나라 유리공업에 발전을
위해서 더욱더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근세 우리나라의 유리제조공장의 효시는 1902년에 완성된 이용익의 "국립유리제조소"라고 할수 있겠다.
이용익은 1903년에 국립유리제조소를 러시아 기술자의 협조를 받아 병유리 생산시설을 갖추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으로 별 효과없이
폐쇄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1909년 황족인 이재온이 서대문에 유리공장을 착공하였으나 1913년에는 역시 황족인 이재현이 경성초자 제조소를 설립하여 병유리, 램프를 만들었으나 점차 쇄퇴하고 이후 작은규모의 유리공장들이 병유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 평양, 부산등에 건설되었지만 (전국에 1931년에 6개 공장, 1938년 24개 공장)
근대적 시설을 갖추고 병유리를 생산한것은 1939년에 아사히맥주회사의 자본으로 설립된 제2일본초자 주식회사 (해방후 동양유리공업주식회사)로 주로 맥주병, 사이다병, 됫병을 생산하였다.

그 후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자동식과 수동식 제조시설을 겸의한 동양초자회사가 영등포에 설립되었으며 반자동식제조시설을 갖춘 일광초자가 부산에 설립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남한에 약 47개의 소규모 유리공장이 생겼다가 6.25동란으로 시설이 크게 파손되어 중단사태에 들어갔으나 전쟁이 끝난후 복구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소규모공장을 합하여 약 41개정도가 되었다. 이후 이러한 상황하에서 맥주의 생산이 본격화되고 수요가 늘어 부산에 잇던 해남초자가 1957년 5월에 영등포에 자동시설을 갖춘 병유리공장을 준공하고 (후에 대한유리로 개정) 활발한 병유리생산을 시작하였다.
판유리는 1950년 10월 UN총회의 결의에 따라 1951년 7월 활동을 시작한 운크라 (UNKRA)의 건설 사업중의 하나로 1956년 인천 판유리 공장 (현,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을 건설 1957년 9월 과 함께 순조로운 조합 상 에 들어감으로서 우리나라 판유리 제조건설을 정착시켰다.


 

 

 

 

 

해방후 40여년 유리공업의 근대화가 판유리공장, 자동병유리공장의 건설로 시작된지 30여년의 짧은 기간동안에 많은 신기술개발과 발전을 거듭하여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국제수준에 근접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