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출토된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래된 유리는 낙랑시대의 유적에서 발굴된 유리 옥, 유리이당, 유리함선 등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장식들이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 및 몽고 등지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유물들은 중국 한대의 유리조형의 흐름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리가 제작된 것은 삼국시대로, 이 시대의 유리 유물은 계속 발견되고 있으나 유리의 기원이나 고려, 조선시대의 제작상태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부여읍 합송리 청동기 유적에서 출토된 원통형 유리장신구가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유리제품이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지만 이 또한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고대 유리 제품들은
대부분이 로마시대 형태의 유리(Roman Glass)이며 동양적인
유리가 출현한것은 통일신라이후
불교문화가 도입되면서 부터이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유리 기구는 신라시대 경주고분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는데,
금관총 에서 나온 유리잔, 금령촌 에서 나온 유리주발,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그릇 등은
지금까지 동양에서 발견된 일련의 유리 기물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있다. 아울러 경주군 대남면에 유리용 가마가 있었음이 확인되기도 했는데,
이같은 사실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유리문화가 시작된 것
신라시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인 특유의 조형 의지에 의해
독자적인 기술로 발전되어 갔으며
조선조 말기 서구문화가 들어올
때까지
고려시대 이후 유리제작 기술은 단절된 시대가 계속되었다.
신라시대에 융성했던 유리문화는
이후 고려조선시대의 도자기에 밀려 오히려 쇠퇴의 길을 걸었다. 청자나 백자같은 훌륭한 도자기 문화가 꽃을

피운 반면 유리 제조기술은 아예 답보상태에도 미치지를 못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정서는 순수한 흙 문화에 더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근세 우리나라 유리제조공장의 효시는 1902년에 완성된 이용익의 "국립유리제조소" 이다.
이용익은 1903년에 러시아 기술자의 협조를 받아 병유리 생산시설을 갖추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으로 효과없이 폐쇄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1909년 황족인 이재온이 서대문에 유리공장을 착공하였고
1913년에는 역시 황족인 이재현이 경성초자 제조소를 설립하여 병유리, 램프를 만들었으나
점차 쇠퇴하고 이후 작은규모의 유리공장들이 병유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 평양, 부산등에 건설되었지만 (전국에 1931년에 6개 공장, 1938년 24개 공장)
근대적 시설을 갖추고 병유리를 생산한것은 1939년에 아사히 맥주회사의 자본으로 설립된
제2일본초자 주식회사 (해방후 동양유리공업 주식회사)로 주로
맥주병, 사이다병을 생산하였다.

그 후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자동식과 수동식 제조시설을 겸비한 동양초자회사
영등포에 설립되었으며 반자동식 제조시설을 갖춘
일광초자가 부산에 설립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남한에 약 47개의 소규모 유리공장이 생겼다가 6.25동란으로 시설이
크게 파손되어 중단사태에 들어갔으나 전쟁이 끝난후 복구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소규모공장을 합하여 약 41개 정도가 되었다.

이후 이러한 상황하에서 맥주의 생산이 본격화되고 수요가 늘어 부산에 있던 해남초자
1957년 5월에 영등포에 자동시설을 갖춘 병유리공장을 준공하고 (후에 대한유리로 개정)
활발한 병유리생산을 시작하였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유리제품의 주원료가 되는 규석,규사,석회석,백운석과
같은 천연원료가 대량 산출되고 있으며 그 질도 우수하고 제조기술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으므로 유리산업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 의해 유리조형의
대중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출처>isungm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