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法(Crown Method)에 의한 창문유리의 제조는 3세기 경, 즉 고대 로마시대에 시리아인에 의해서 개발되었습니다. 이 제조법은 18세기 말까지 번창했으며, 영국에서는 20세기까지도 이 방법을 이용, 유리를 제조하는 공장이 있었습니다.

블로우 파이프(Blow Pipe)끝에 녹은 유리를 묻혀 감은 후, 불어서 구(球)를 만들며, 적당한 크기로 되었을 때 반대편에 펀티(Punty: 용융(熔融)유리를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쇠막대)를 용착(熔着)시키고 블로우 파이프를 떼어 냅니다.

다음 단계에서 유리구(球)를 가열, 부드럽게 만든 후 펀티를 고속 회전시켜 원심력을 이용, 평면유리를 생산하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큰 원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아니고 직경 10~12cm 정도의 원판을 만든 후 그것을 납(鉛)으로 연결,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그 당시의 회화나 동판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 원판의 한가운데에 배꼽과도 같은 펀티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이 크라운법은 점차 연구, 개량되어 직경 1m의 원판을 만들 수 있게까지 되었으며 배꼽부분을 피해 사각형으로 절단하는 기술도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균일한 두께나 면이 고른 유리를 만들 수는 없었고 또 크기에 한도가 있으며 생산이 비능률적이라는 점 등, 몇몇 결점이 내재된 상태였습니다. 또 당시까지도 다이아몬드에 의한 절단법이 발견되지 않아 유리 위에 뜨거운 인두를 댄 후 냉수를 부어서 손집게로 다듬는 등 절단이나 가공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1800년 경 크라운法에 비하여 대형 창유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서 실린더법이
독일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유리물을 블로우 파이프 끝에 말아올려 크라운法과 같이 먼저 유리구(球)를 만든다음, 작업대 밑에 있는 깊은 원통속에 넣고 흔들면서 계속불어 원통을 만든후, 양쪽끝 부분을 잘라냅니다. 잘려진 원통은 직경이 30~50cm, 길이가 120~180cm 정도인데 이를 길이 방향으로 절단하여 요(窯 : 도자기를 굽는 가마)속에서 재가열하면 평평한 판이 됩니다.

이 방법은 크라운法 보다 큰 유리를 만들 수 있었고 중앙의 펀티 자국도 없을 뿐 아니라 제조원가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냉각과 재가열의 반복작업으로 인하여 유리의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두께의 차도 심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판유리의 제조법은 급속히 발전, 대량생산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핸드 실린더법은 많은 숙련공을 필요로 하고 제조시간 또한 길었습니다.
이 무렵 인간이 숨을 불어넣는 대신
압축공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는 19세기 말엽, 유럽에서도 고안된 바 있으나 공업화한 것은 1903년 미국의 라버(Lubber)와 「아메리칸 윈도우 글래스社」였습니다. 유리물을 로(furnace)에서 일단 큰 국자를 사용, 도가니로 옮긴 후, 실린더를 밀어 넣고 압축공기를 불어넣으면서 서서히 당겨 올리는 방법입니다.

이는 최초의 기계화된 성형법(成型法)으로서 제1차세계대전 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법으로서 길이 12m,직경 0.9m의 긴 유리까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머신 실린더법(Machine Cylinder Method)에 의한 판유리의 생산은 품질이 우수한 연속식 인상법에 의한 판유리 생산이 시작되기까지 급격히 증가되었으나 1929년에 이르러 생산이 중지되었습니다. 1925년의 판유리 생산량 중 59%는 머신 실린더법, 29%는 콜번법, 10%는 풀콜법, 2%는 핸드 실린더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연속식 수직인상법인 풀콜법은 1903년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1904년 특허를 취득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러나 완성되기까지 변하기 쉬운 유리의 작업온도, 인상기 밑부분 주위의 냉각, 유리의 조성문제 등 많은 난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노력을 거듭, 제1차세계대전직전(1913년) 벨기에에서 최초로 실용화할 수 있게되고 독일인과의 협력에 의하여 그 실용성은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중 독일 점령하에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벨기에로 돌아온 풀콜은 적국에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어 결국 감옥에서 병사합니다. 이 방법은 결국 풀콜이 병사한 직후인 1919년 완성됩니다.

데비튜스(Debiteuse)라고 부르는 내화물(耐火物)을 로의 끝부분에 있는 드로잉 킬른(Drawing Kiln)에 넣고 데비튜스의 슬로트(Slot)로부터 베이트(Bait)를 사용하여 원판을 인상합니다. 이때 데비튜스 상부에 있는 시트 쿨러(Sheet Cooler)는 유리를 냉각하여 적당히 경화(硬化)시키며 엣지(Edge)를 잡아주는 두쌍의 널러【Knurler 또는 스트레처(Stretcher)】는 원판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약 6m높이의 서냉탑 속의 아스베스토스 로울러(Asbestos Roller)사이를 통과하여 원판실로 올라갑니다. 원판의 두께는 주로 인상속도에 의하여 결정되며 2mm의 인상속도는 분당 65˝ 정도이고, 머신(Machine)의 폭은 통상 80~90˝입니다.

이 방식의 특징은 그 용해능력에 따라서 하나의 용해로에 다수의 인상기를 부착시킬수 있다는 점이니, 9~12개의 인상기를 부착시킬 수 있었습니다. 데비튜스의 슬로트는 주변의 침식, 혹은 실투생성(失透生成)등에 의하여 변형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원판의 두께에 부분적인 불균등이 발생하며, 작은 생성물이 원판에 부착하는 등 결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용한 데비튜스는 적당한 시기에 교체해야 합니다. 풀콜법, 콜번법 및 실린더법은 1930년대에 서로 경합을 벌였으나 풀콜법이 단연 우세, 제2차세계대전 직전까지 42개국에 800여기의 머신이 설치되었습니다.

 

 

콜번법은 1905년 미국의 콜번이 특허를 얻은 후 1916년 리비 오웬스(Libbey-Owens)에 의해서 개량되어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풀콜법과 다른 점은 데비튜스를 사용하지 않고 원판을 용융유리면에서 직접 인상합니다. 인상된 원판은 용융유리면에서 70cm거리에 있는 벤딩 로울(Bending Roll)에 의해서 직각으로 굽혀진 후 수평 로울에 의해 약 60m의 아닐링 레어(Annealing Lehr)를 통과합니다. 이 때 원판의 양 끝은 널러에 끼워져서 일정한 폭을 유지하게 됩니다.

원판의 두께는 주로 인상속도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원판의 두께를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원판의 폭 방향으로 용융유리를 동일하게 냉각시켜야 하는 바 이것이 콜번법의 주요 포인트입니다. 2mm의 인상속도는 분당 130˝ 정도이며 원판폭은 통상 100~158˝  입니다. 또한 이 방법에 따르면 유리가 수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아닐링 레어를 길게 할수있어 서냉이 가능, 절단이 용이합니다. 그러나 렌딩 로울에 이물이 부착한다든가, 로울 표면이 긁히면 그것이 그대로 원판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벤딩 로울을 수시로 연마, 교체하여야 합니다. 콜번법은 하나의 로에 1~4개의 인상기를 부착할 수 있습니다.

 

 

「PPG社」는 풀콜법과 콜번법이 개발될 당시 이미 마판유리 메이커로서의 위치를 확립, 대규모 설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풀콜법과 콜번법의 특허권을 인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1918년~1925년에 걸쳐 그레고리우스(Gregorious)로 하여금 새로운 판유리 인상법의 개발을 진행시킨 바, 마침내 1926년 특허를 취득합니다. 이는 풀콜법과 같은 수직인상법이지만 풀콜법의 데비튜스를 사용하지 않고 드로우 바(Draw Bar)라고 부르는 내화벽돌을 드로잉 킬른의 유리물속에 잠기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표면으로부터 유리가 인상되는바 이 점은 콜번법과 유사합니다.

이 피츠버그법은 1930년 경 실용화되었으나 풀콜법이나 콜번법에 의한 판유리에 비하여 품질이나 생산효율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후 「필킹톤(Philkington)社」가 이를 도입, 개량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효율이나 품질을 매우 높은 수준에까지 끌어올리게 되었습니다. 개발 초기에는 로당 4기의 머신을 부착했으나 나중에는 8기로 늘어났으며, 그 후에는 10기의 머신까지도 부착시킬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