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기원에 있어서 그 지역과 시대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수천년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비교적 보급되어진 때는 어림잡아 약 3,500년 전 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의 유리는 오늘날의 상식으로 말하자면 고작 유리의 이미지를 갖는것이었다. 제법은 사질 점토로 내경을 만들어 그 외측을 녹인 유리로 덧칠하여 고화시키고
내형을 파내는 방법과 자형에 용해 유리를 넣어 융형을 떠서 성형하는 방법이었다. 이것들은 각각의 형을 만들어 유리용기를 성형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불가능하고, 용기의 크기와 형태도 한계가 있었다. 한편, 중국에서도 같은 시대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Glass Beads와 톰보옥등이 내려오고 있어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의 기술 교류에 의해서 전해진것이라고 추측된다.


 

기원전 30년경의 새로운 로마제정시대로부터 로마제국이 분열하는 395년사이에
유리공예사상
세기적인 생산기술 혁명이 일어났다.

이 기술은
부는 유리기법이라고 불리어지는것이다.

철 파이프앞 끝에 유리를 물방울 같이 말아 올려 둥글게 하고, 또 한 끝단으로부터 공기를 불어넣어 유리를 풍선과 같이 부풀려서 성형하는 방법이다. 부풀려진 유리는 바깥 공기와 닫는 면적이 넓어 800도씨의 전후의 굳지 않은 유리도 급속히 냉각되며, 소형은 2-3분으로 딱딱하게 고화되고 대형의 것도 10분 정도면 고화한다.
개개형을 만들던 시대로서는 생각할수 없었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부는 유리 기법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져,
기본적인 유리기법으로서 세계에서도 널리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당시의 유리 공예품은 Roman Glass라고 총칭되는 것으로 그외 컷트가공, 에나멜채화, 선묘화 등의 기술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창재료에 있어서 고대 로마의 주택건축에서 반투명의 천연석재와 운모판이 일반적이었던것 같으나 이때에 처음으로 유리와 같은 창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봄페이의 중앙광장의 동북방에 접한 훼로가에 면하고 있는 광장 목욕탕의 천정에서는 2개의 작은 창이 청동 창살에 4개의 폭 230mm, 길이540mm의 판유리가 사용되었었다.

또한 4세기경 로마시인 L.C 라크 단테우스가
"우리들은 창유리를 통하여 보고자하네, 눈으로 물건들을 분별할수 있다네"라고 노래하고 있어 시는 이 이전에 투명유리가 출연하여 실제로 상당히 보급되었다고 하는 것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들 로마시대의 유리용기의 뛰어난 생산물, 기술등은 유럽을 시작으로 멀리 중국 까지도 전해진 듯 하며 여러가지 고문헌에서 창유리등에 대하여 많이 인용하고 있다.

 

 

위용을 떨치던 로마제국은 395년에 동서로 분열하고, 476년에 소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로마 유리 공예는 동방으로 이주하거나 변방으로 이주한 공인들에 의해서 보전되어 이주한 그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각지에서 새로운 양식의 유리용기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후랑크 그라스, 사산 그라스, 이슬람 그라스 비쟌틴 그라스 등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이 시대의 대표적인것이다. 또한 에나멜 채석과 색유리의 제조등도 성행하였고, 특히 비쟌틴제국에서 개발되었던 스테인드 그라스는 이웃한 동방의 회교국에도 보급되어 서양의 유리공예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근세는 공예로서의유리가 크게 발전하였다. 1200년경에 멸망한 동로마제국의 유리공인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베니스 공화국에서 이동하여 한 세대를 지난 베네치아 그라스를 이룩하였다. 15-16세기는 베네치아 그라스의 전성기로 국가의 권력에 의해 유리공인들은 무라노섬이라고하는 자그마한섬에 유폐된듯이 이주시켜 기술을 섬외로 빠져나갈수 없는 부문율로서, 세계의 유리를 구속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이때쯤 만들어졌던 유리용기는 실제로 다양하여 식기는 물론이고 샹데리아와 램프, 동물,배, 탑등의 유리세공, 연금술용 화학용구, 실내장식물, 창유리, 거울 등 실용적인 것이고 특히 거울에 있어서는 1507년에 달,가로형제가 수은을 사용한
유리거을을 발명 하게 되어 세계로 넓게 전파하게 되었다. 1682년에 완성한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중에는 이무라노 섬으로 프랑스가 직인을 잠입시켜 만든 것으로 현대말의 산업스파이 이야기와 같은 에피소드가 내려오고 있다. 그 후 이것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거울붐이 일어났다.

 

 

거울붐을 일으켰던 그늘에서는 판유리 제조법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종래 세세하게 만들었던 판유리도 새로운 제품의 발견에 의해서 공업화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유리가 공예품에서 실용품으로 전환을 시작하여 그 후 유리공예분야와 판유리 분야로 뚜렷이 분화하여 각각이 독자의 걸음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판유리 분야로는 차례차례 새로운 제법과 새로운 품질의 유리가 개발되어 오늘날과 같이 유리없이 살수 없는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자연은 화산이라는 거대한 요로 또는 낙뢰의 고열로 지구가 창조된 이후 부단히 유리를 녹이고 있다. 이러한 유리는 천연유리(Natural glass)라고 불리는데 용악의 급행으로 생긴 유리가 흑요석,유리질현무암 또는 안산암 등에 끼어서 대량적으로 지상에 존재한다. 이와같이 자연은 유리를 녹일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름답게 가공까지 하는바, 화산모라고 불리는 화산특유의 글라스,울은 거기에 서식하는 새들에 의해 둥지를 트는 재료로 쓰인다. 이러한 천연유리는 천연적으로 각종 금속산화물을 함유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용에는 부적당한 것이 많다.

우리는 자연이 용융하는 방법에 비하면 비록 그 규모는 지극히 작지만 불순물이 훨씬 적게 함유된 유용한 유리를 용융할수 있다.
인조유리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일로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집트에서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으로 추정되는 시대의 각종 유리가 발견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도기편에 두꺼운 색유리로 모양나게 한것이 있는바, 구슬류나 원시적 방법에 의한 유리제 작은 병도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고대유리는 거의 색유리인데 그 색은 코발트, 청, 녹, 황, 주황, 대자색, 흑 및 자색인바 오늘날 우리가 보아도 대단히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그후 유리제조법이 점차 발달하여 기원전후에는 오늘날의 형차방법이 발견되어 얇고 투명한 유리그릇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리는 로마제국의 발전과 더불어 유럽각지에 널리 전파되었으며 그 후 중심이 베니스로 옮겨졌다. 한편 중앙아시아를 거치거나 남쪽바다를 건너 이것이 중국에 들어왔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유리가 만들어졌는데 로마의 유리그릇과 그 제조법이 전해짐에 따라 유리제구슬, 장구형태의 에어링 등 중국특유의 것이 만들어졌다.

 

중국유리는 한반도에서 세옥, 관옥등으로 발달했고 이는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근대유리의 발전과정을 다음에 주요발명 년도와 국명을 열거함으로써 개발키로 한다.
현미경은 1590년 네덜란드, 온도계는 1600년경 이탈리아, 망원경은 1609년 네덜란드, 남크리스탈은 1675년 영국, 루비글라스는 1680년 보헤미아, 채석렌즈는 1760년 영국, 광학유리는 1799년 스위스, 격판은 1805년 스위스, 안경은 1827년 영국, 방전관은 1859년 독일, 축조식 유리탱크는 1860년 독일, 강화유리는 1875년 프랑스, 안전유리는 1879년 프랑스, 전구는 1879년 미국, 유리섬유직물은 1893년 미국, 창유리 원통법은 1903년 미국, 자동제병기는 1903년 미국, 고브피더는 1910년 미국, 엄파이어 머신은 1912년 미국, 내열유리는 1915년 미국, 창유리풀콜법은 1916년 벨기에, 창유리콜번법은 1916년 미국, 창유리롤법은 1918년 독일, 던너관인발기계는 1920년 미국, 웨스트 레이크벌브차형기는 1922년 미국, 리본벌브차형기는 1927년 미국, 신종광학유리는 1936년 미국, 20인치 반사망원경주입법은 1935년 미국, 96%실리카유리는 1938년 미국, 기포유리는 1940년 미국,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은 1940년 미국, 데이트로세라믹스는 1957년 미국에서 발명되었다.